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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눔

2020년 가해/ 성지주일 말씀 (안봉식 베다 신부)

 

이사 50:4-9/ 시편 31:9-16/ 필립 2:5-11 /

복음: 마태 26:14-27:66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통은 국적이나 사회적 지위, 부와 가난 그리고 개개인의 인격의 성숙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입니다. 지금 온 인류를 잠식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수많은 인간의 육체를 황폐화하지만 동시에 이 세계 모든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황폐화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순산 고통의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고통의 사건과 주제를 중심으로 맴돌아 갑니다. 우리가 오늘 수난 복음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단지 나자렛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는 극적인 역사적 사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수난 이야기 전체의 의미를 찾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뿐 아니라 지금 여기고통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서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그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고난주일과 성주간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의 고난, 그 고통 속에 한결같이 담겨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며 우리가 겪는 고난의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오늘 수난 복음 가운데에는 수난이라는 위기 속에서 관대하고 용감하게 응답하는 예기치 않았던 제자들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등장하는 한 무리들은 우리 공동체의 제자 됨의 의미를 가르쳐줍니다. 한 장면에만 등장하거나 작은 역할을 맡은 이 사람들은 제자사도라고 불릴 수 없을지라도 진정으로 예수님의 따르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예기치 않은 인물 가운데 첫번째로 빌라도의 아내를 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 수난복음에 잠깐 등장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뜻밖의 헌신을 보여줍니다.(27:19) 그녀는 요셉처럼 꿈에서 예수님의 무고함에 대한 경고를 받고 빌라도에게 무죄한 사람을 단죄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의 십자가형에 처하고 골고타에서 지키던 군사들도 예기치 못한 제자 됨의 예가 됩니다. 백인대장과 그의 군사들은 예수님께서 죽는 순간에 일어난 경이로운 징조들을 보고 나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27:54)

마지막으로 숨어 있는제자는 아리마태아 출신의 요셉입니다.(27:57-61) 그의 제자 됨 역시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방치한 것과 대비됩니다. ‘부유한사람인 요셉이, 공적으로 명예를 일고 처형당한 사람과 자신을 동일 시 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이 짧은 일화는 자신의 소유와 위치를 고난과 위험의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로 대처해야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 됩니다. 이렇듯 주님의 공동체는 예기치 않은 곳에 준비되어 있으며, 열려있는 공동체임을 일깨워 줍니다. 고통과 고난 가운데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느님에 대해 묵상하도록 인도합니다.

오늘 성지주일을 맞이하면서 기념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영광과 환의에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골고타의 십자가로 연결되는 수난의 입성이기도 합니다. 성지가지를 들고 환호하는 군중이 사흘 뒤에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칠 것을 이미 아시고 계셨던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주님에게는 이 환호가 가슴 찢어지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저 군중의 환호성 너머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는 고난의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더 굳은 결심을 하셨을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 추종하는 무리의 인기에 눈이 어두워져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기 일쑤입니다. 또한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 보이는 절한 현실 문제에 몰입하다 보면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를 눈감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입성에서 골고 타 언덕에서의 치욕스러운 처형까지 줄곧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며 현실을 넘어선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평화의 행렬은 십자가의 고통의 길을 넘어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는 모든 인류의 구원과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신앙은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의 현실을 넘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 고난의 순간에 우리는 회피하고 갈팡질팡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제자들 역시 용서하시고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희망이 됩니다. 반면 이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는 공통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주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하는 예기치못한 사람들 또한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어떤 제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이 고통의 순간에 현실 너머 일하시는 하느님의 발견하고 참된 부활의 영광에 함께하는 수원교회 교우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수원교회 관할 사제 안봉식(베다)